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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일요일의 폐공장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고요했다. 첫 눈이 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그 주변은 이미 작은 잡초 위마저 새하얗게 눈이 쌓여있었다. 소년은 그런 폐공장의 깨진 창문에 걸터앉아 저 멀리 보이는 높은 빌딩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 2 홍콩의 하늘은 아주 싸늘한 느낌의 청회색이었다. 언제나처럼. 갈색가죽구두를 신은 억센 발이 그녀의 얼굴을 걷어찼을 때 소녀는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대체 몇 번이나 정신을 잃었던 걸까. 그녀는 일어나보려 했지만 이미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검은 단발머리의 이 소녀는 팔 다리 얼굴 할 것 없이 온통 만신창이였다. 얼굴은 피멍과 코피로 범벅이 되어 제대로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였고 한쪽 발은 부러진 듯 뒤틀려 있었다. 희미해진 소녀의 눈에 그녀의 남동생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녀보다 훨씬 어린 이 일곱 살의 소년은 이미 한참 전에 숨이 끊어진 채 눈 위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젠장, 신발에 피가 튀었잖아.” 거칠게 혀를 차는 소리와 낄낄거리며 웃는 소리가 소녀에게 들렸다. 곧 쓰러져있는 그녀의 멱살을 누군가 잡아 올리더니 그녀를 옆의 시멘트벽에 던져버렸다. 소녀의 몸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벽에 부딪히더니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곧 쓰러진 그녀의 머리에서 피가 흥건히 배어나와 바닥을 적셨지만 그런 무참한 모습에도 소녀는 아직 숨이 붙어있었다. 그녀는 이미 고통도 추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혼미한 가운데 잠시 머릿속에 남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소녀는 귀여운 남동생을 데리고 친구네로 놀러가기 위해 집을 나서고 있었다. 그랬던 그녀가 지금은 마치 가축마냥 이 폐공장으로 느닷없이 끌려와 죽기 직전이 될 때까지 얻어맞고 있는 것이었다. 들개들. 그래 들개들이야. 소녀는 자신과 남동생을 데려와 죽이려하는 무리들의 이름을 떠 올렸다. 또다시 누군가 그녀의 멱살을 끌어올렸다. 그녀는 자신이 곧 죽게 될 것이라고 직감적으로 느꼈지만 신기하게도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하게 된 것일까. 강제로 일으켜 세워진 소녀의 희미한 눈에 누군가가 눈에 들어왔다. 이 무자비한 놀이에는 별 관심 없다는 듯이 구석에서 창 밖을 바라보는 소년의 모습. 10세 초반으로 보이는 어린 소년이었다. 그리고 소년의 머리에는 양처럼 굽어진 뿔이 두개. 그렇구나. 저 아이도 들개로구나. 소녀는 생각했다.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커다란 창문 너머로 높은 빌딩이 보였다. 저 빌딩을 바라보고 있는 걸까. 도시에서 제일 높은 빌딩이지. 도시 어디에서나 보이는 아주 높은 빌딩이야. 남동생이 얼마 전에 올라가 보고 싶다고 했었지. 저 아이도 올라가 보고 싶은 걸까. 혹시 빌딩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단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 그다지 즐거워 보이지는 않는데. 혹시 무언가 걱정이라도 있는걸까. 부모님과 다툰 걸지도. 나도 자주 그런 일이 있는걸. 오늘도 동생을 데리고 멋대로 놀러 나갔잖아. 어서 집에 돌아가지 않으면 엄마아빠에게 혼날지도 몰라. 소녀에게 또다시 날아온 묵직한 주먹이 그녀의 관자놀이를 후려친 순간 소녀는 멱살이 붙잡힌 채 축 늘어져 버렸다. 그녀의 멱살을 움켜쥐고 있던 지저분한 더벅머리의 소년은 숨통이 끊어진 그녀를 바닥에 팽개쳤다. 그는 재미있었다는 듯이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누구한테 맞은 것도 아니었는데 그의 코에서 코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또 저질러버렸네, 드랑드.” 피범벅이 된 소녀의 시체와 더벅머리 소년을 번갈아 보며 샤샤는 깔깔대며 웃었다. 샤샤는 올해로 14세가 된 소녀였다. 귀여운 디자인의 빨간 겨울용 코트가 아주 잘 어울렸다. 흑발의 생머리는 양 갈래로 묶어 예쁘게 단장했지만 그녀를 처음 보는 사람은 그녀의 헤어스타일보다도 머리에 나있는 뿔에 더 눈이 갈 것이었다. 두 개의 작고 날카로워 보이는 뿔이 그녀의 머리에 나 있었는데 깊은 와인 색의 뿔은 마치 고가의 보석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 망할 년이 새 신발을 더럽혔거든. 젠장, 신발이 시뻘겋잖아.” 방금 전까지도 한참동안 소녀를 두들겨 패던 더벅머리의 소년은 질리지도 않고 그녀의 시체를 걷어찼다. 드랑드라고 불린 이 소년은 샤샤와 동갑으로 갈색의 피부를 지닌 건강미가 넘쳐 보이는 소년이었다. 상당히 추운 날씨인데도 그는 얇은 티셔츠에 스키바지 하나만 걸치고 있었다. 가끔 시도 때도 없이 히죽히죽 웃는 버릇이 있었는데 그럴땐 어딘가 정신 나간 소년처럼 보이기도 했다. 샤샤와 마찬가지로 그도 머리에 두 개의 뿔이 나 있었지만 샤샤와는 달리 뒤로 젖혀진 길쭉한 회색의 뿔이었다. 샤샤는 그런 드랑드의 뿔을 보며 누워서 잘 때는 꽤나 불편하지 않느냐고 자주 놀리고는 했다. 뿔이 나 있는 것은 샤샤와 드랑드 뿐만이 아니었다. 그들과 지금 함께 폐공장에서 놀고 있는 소년소녀 대여섯명 모두가 머리에 뿔이 나 있었다. 모양은 가지각색이었지만. 뿔은 그들 모두가 평범한 아이들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말해두지만 난 안 치울 거야. 난 안 가지고 놀았으니까 너희가 알아서 해.” 샤샤는 어느새 드랑드로부터 한참 떨어진 곳으로 달려 가 버렸다. “망할 계집애 같으니.” 드랑드는 툴툴대며 죽은 소녀와 그녀의 동생의 시신을 양손에 질질 끌고 가더니 폐공장의 구석에 대충 던져두었다. 그리고는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이러면 아저씨들이 대충 치워주겠지.” 샤샤는 질린 표정으로 드랑드를 쳐다보았고 다른 아이들은 낄낄거리고 웃기 시작했다. 이 뿔난 아이들이 자주 찾아오는 이 폐공장은 원래는 상당한 규모로 운영되는 방직공장이었다. 지금은 언제 버려졌는지도 모를 정도로 낡고 여기저기 부서져있었지만 이 인적 드문 거대한 폐공장은 드랑드와 그의 패거리를 위해서는 딱 좋은 놀이터였다. “어이, 파피. 아직도 바깥구경이냐. 작작하고 일루 와.” 드랑드는 저 멀리서 창가에 걸터앉아 멍하니 밖을 내다보고 있는 소년을 불렀다. 파피라고 불린 그 소년은 드랑드의 목소리를 못 들었는지 아무런 대답 없이 멍하니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파피, 임마 듣고 있는거야?” 드랑드는 단숨에 파피에게 달려가 그의 옆까지 다가갔지만 그는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뭔가에 홀린 듯이 멍하니, 그저 멍하니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다. “야!” 드랑드가 파피의 귀에 대고 크게 소리를 지르자 그는 깜짝 놀라 걸터 앉아있던 창틀에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그리고는 얼빠진 얼굴로 드랑드를 올려다보았다. “멍청아,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거야.” 드랑드는 특유의 비웃음 섞인 미소를 지으며 파피를 바라봤다. 그의 입술 사이로 보기 싫게 난 덧니가 드러났다. 파피는 일어나 그의 옷에 묻은 먼지와 눈을 털어내며 말했다. “...미안.” 건조하면서도 퉁명스러움이 배어나오는 어투였다. 유백색의 풍성한 곱슬머리와 머리카락처럼 굽어진 뿔. 그리고 그가 언제나 보여주는 멍한 듯한 표정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영락없는 양을 떠올리게 했다. 드랑드의 패거리 중에서도 제일 어린 12세의 파피는 드랑드들과 함께 다니면서도 그들 사이에서는 어딘가 붕 떠 있는 존재였다. 유독 그들의 리더격인 드랑드와 발랄하고 말 많은 샤샤가 그를 자주 신경써주고는 했지만 그는 홀로 있는 시간을 더 즐기는 듯 했다. “다 끝난거야?” 파피는 구석의 시체 두 구를 바라보며 물었다. “생각보다 너무 싱거워. 역시 여자애랑 꼬마는 오래 버티질 못한다니까.” 드랑드는 그렇게 아쉬운 듯이 말했지만 표정은 상당히 만족스러운 듯 했다. “다음에는 어른들을 상대해 보고 싶은데 말이야.” 드랑드는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며 TV에서 본 권투선수의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권투를 전혀 모르는 파피의 눈에도 그 자세는 명백한 엉터리였지만 언제나처럼 드랑드의 주먹은 굉장히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웬만한 성인남성들도 때려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이 겁도 없이 그에게 저항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얼마전부터 시작한 그들의 놀이 중 하나였다. 오늘도 그들은 함께 마을에서 점심을 먹고 폐공장으로 가는 도중 눈에 띈 소녀와 꼬맹이를 함께 강제로 끌고 왔다. 드랑드는 그런 식으로 약한 아이나 여자 등을 끌고 와서 장난삼아 때리고 괴롭히다 죽이곤 했다. 당하는 이들은 가끔, 아니 결국에는 저항을 하고는 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결국에는 이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소년에게 무참히 살해당하고는 그걸로 끝이었다. 이 잔혹한 행위를 나중에는 드랑드의 친구들도 오히려 재미있어 했다. 그것이 말 그대로 끔찍한 죄를 짓는 행위일지는 몰라도 그들이 알 바 아니었다. 그들은 벌을 받지 않으니까. 이 아이들의 이름은 네오칠드런. 외양상 아이들이 사람과 다른 점은 머리에 난 두 개의 뿔 뿐 이었지만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는 보통 사람들과는 전혀 달랐다. 그들의 출생도 삶의 법칙도 목숨의 가치도 보통 사람들과 모두 달랐다. 이 소년소녀들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며 그들과 결코 섞이지 못하는 기괴한 존재들이었다. 그들이 특히 많은 이 곳 제 2 홍콩의 사람들도 이 아이들에 관한 것은 거의 알지 못했지만 제일 중요한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이 아이들에게 결코 해가 되는 짓을 해서는 안 되었다. 결코. 제 2 홍콩의 사람들 중 네오칠드런이라는 명칭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 이름으로 이 아이들을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들개들 - 사람들은 이 짐승들을 그렇게 부르곤 했다. 한바탕의 유희가 끝나자 파피는 그의 친구들에게 봐야할 TV프로가 있다고 대충 둘러댄 후 작별인사를 했다. 먼저 떠나려는 파피를 샤샤가 뚱 한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곧 익숙한 일이라고 생각했는지 손을 흔들었다. 폐공장을 나설 때 파피의 눈에 아까 그가 내내 바라보던 고층빌딩이 들어왔다. 그는 그 빌딩위에서 내려다 본 풍경을 잠시 상상해보았다. 그리고는 필시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아름다운 풍경일거라고 생각했다.
1 파피가 폐공장 지대에서 빠져나왔을 때는 아직은 환한 대낮이었다. 그의 집은 폐공장에서 버스로 열 정거장이나 떨어져 있었지만 그는 항상 걸어서 돌아가고는 했다. 폐공장 주변에는 사람들이 거의 다니질 않았고 파피는 그런 싸늘한 풍경들을 좋아했다. 비포장도로에 잔뜩 쌓인 눈이 그 주변에 인적이 드물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고 그는 그런 조용한 거리를 걸으면서 생각에 빠지는 걸 좋아했다. 낯익은 풍경들이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들은 그를 즐겁게 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보면 어느새 시끄러운 도시의 번화가가 가까워지곤 하는 것이었다.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은 듯 했는데 마을시장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형형색색의 조명과 낡은 간판들, 요란스러운 사람들과 자동차의 소리. 그는 시끄러운 거리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마을시장을 지나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가 들어선 마을시장의 입구에는 커다랗게 ‘당신을 환영합니다’ 라는 문구가 써있었다. 파피가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로 지나갈 때에는 그를 알아본 이들은 슬금슬금 그를 피해 흩어지고는 했다. 그가 사는 마을 뿐 아니라 제 2 홍콩에서 ‘들개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자들은 한명도 없었다. 그들은 마치 진짜 들짐승이라도 본 듯한 혐오와 불안감이 섞인 시선들로 파피를 쳐다보았지만 그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에게 아무런 해도 끼칠 수 없다는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으니.
이미 익숙할 대로 익숙한 시선들을 지나 파피가 시장을 빠져 나올 즈음 그는 교차로 너머 친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버스정거장 앞을 지나던, 유난히 눈에 띄는 장신의 여인은 길 건너편의 파피를 보고는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꺼지기 직전의 신호등을 건너 파피에게 달려왔고 그는 잠시 멈춰서 그녀를 기다렸다. “파피, 집에 가는 길이니?” 첼로는 파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옅은 레몬색의 웨이브진 장발과 살짝 처진 눈이 상대에게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미인이었다. 외모는 이십대 후반정도로 보였지만 그녀에게서 배어나오는 분위기가 묘하게 나이를 느끼게 했다. “응. 엄마.” 파피에게 엄마라고 불린 그녀는 파피와 달리 뿔이 나있지 않았다. 파피는 머리를 쓰다듬는 그녀를 약간 성가신 듯한 얼굴로 바라보다가 말없이 그의 머리에 올린 첼로의 손을 슬쩍 뿌리쳤다. 첼로는 약간 유감스러운 듯한 미소를 지으며 파피와 함께 집이 있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첼로가 상냥하게 물었다. “점심 먹었니?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았어?” “...응.” 파피는 짧게 대답했다. “잘됐구나. 엄마는 네가 점심 안 먹고 나가서 많이 걱정했단다.” 첼로는 그렇게 말하며 부드럽게 웃었다. 파피는 그녀를 슬쩍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좀 있다 약속이 있단다. 저녁에는 시장에서 맛있는 것 사서 돌아 갈테니 먼저 집에 가 있으렴. ” 첼로의 말에 파피는 또 고개만 끄덕였다. 여전히 그는 별 말이 없었다. 하지만 첼로는 이 귀염성 없는 아이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아들과의 이런 회화는 이미 그녀에겐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었다. “요즘은 날씨도 무척 추워졌구나.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해야한다.” 그녀는 시종일관 침묵하는 파피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었지만 파피는 그런 그녀가 별로 귀찮은 듯이 보이진 않았다. 여전히 무관심한 얼굴로 첼로를 대하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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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만의 포스팅..
by 버서커거북 at 11/04 링크합니다 ㅠㅠ.. by 버서커거북 at 04/22 위에 것은 제 이야기같기.. by Lindy at 01/09 리플을 그동안 또 안달.. by 제목없음 at 12/14 뇌입어... -_-; by 하츠 at 12/13 이글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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